해방되지 않은 노예들<아미스타드>
나는 가끔씩 대구백화점 앞에서 하는 농업, 농촌 살리기 촛불집회에 나가곤 한다. 2005년은 한국 농민에게 좌절과 죽음의 한 해 였다. 350만의 농민은 무어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니다. 단지 애써 농사지을 곡식 제 값 받고 팔아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싶다는 것뿐이다. 만약 쌀개방이 불가피하다면 마음을 열고 농민들을 자주 만나 바늘구멍 같은 작은 길이라도 열어두어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그렇기는커녕 농민이 죽었는데도 대통령의 사과는 한 달이나 지나서야 마지못해 나왔고, 농민의 과격시위만을 질타하는 목소리들 뿐이다. 얼마나 더 많은 농민이 죽어야하는가. 전체 국익을 담보로 소수 농민의 생존권을 빼앗는 쌀시장개방은 아주 작은 예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아미스타드호의 노예는 지금도 철저히 억압받고 있다.

아미스타드호의 노예와 지금의 농민들의 모습은 닮은 데가 많다. 노예고용주들은 그들이 그동안 노예에게 가해왔던 야만적인 폭력은 아랑곳 않고 노예들이 과격한 살인을 한 것만을 문제로 삼는다. 작년 농민시위를 보고 농민의 과격한 시위만을 문제삼는 것과 똑같다. 인간을 상품으로만 보는 시각도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와 같다. 아미스타드호의 노예는 아직도 해방되지 않았다.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태생부터 찍혀버린 계급으로 평생을 굽신거리며 살아가야하는 이 불공평하고 더러운 세상에서, 지방법원에서 겨우내 승소해서 풀려날 수 있다는 꿈조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허영심에 또다시 짓밟혀져버린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자유를 되찾는다. 오천년의 인류 정치사에서 정치나 국가가 민생문제를 해결해준 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자조自助와 자치력自治力만으로 일어섰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신케이(반란주동자)가 ‘기브 미 어프리(give me a free)'를 외치는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디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유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처럼, 어떤 언 어이든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도 마치 인간의 본능인 듯 그는 말했다. 입가에서 단어가 맴돌고 맴돌다가, 이 말이 맞는 듯 아닌 듯 불안감에 식은 땀을 흘리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법정을 향해 일갈을 한 것이다. 그 문장이 입 밖으로 터져나오는 순간, 그리고 점점 더 그 말에 확신을 가지며 목소리를 높여가는 순간, 그래서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한 인간의 진심과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기적의 순간이다. 바로 이 짧은 찰나의 시간에 인류의 보편적 진리인 ‘자유’는 동서고금을 관통해서 그 법정에 섰고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관통하고는 스크린 밖에 있는 나의 가슴까지도 관통한 것이다. 신케이의 깨달음은 우주의 깨달음이다. 한 사람이 벗어나면 그에 따라 수백수천의 사람이 벗어나고 수백 수천의 사람이 벗어나면 수천수만의 사람이 벗어나듯 신케이의 깨달음은 온 우주의 깨달음이다. 단 한 사람의 영혼이 우리에게 무엇이 진실인지를 일깨워준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케이가 법정에서 이기고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로 귀국했을 때, 아무 가족도, 부족도 노예로 팔려가고 남아있지 않았듯...... 세상은 민족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계급으로 나뉘어진다고 한 김규항의 말처럼 여전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노예제에서 비정규직정도로만 바뀌었을 뿐 아주 공고하게, 아니, 예전보다 더 교묘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짓눌리고 있다. 체게바라는 말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 불의에도 우리는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고. 대관절 나는 왜 이렇게도 무식한가?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이렇게 무관심하게 지내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가? 기억하자. 아미스타드 호에서 바다로 버려진 수많은 이름 모를 노예들의 죽음을.수많은 사람의 피를 희생으로 오늘의 자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발걸음으로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by 왕도비정도 | 2006/04/04 11:37 | 잡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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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자유인 at 2006/04/06 13:28
왕도비정도님의 고민과 끊임없는 발걸음에 조촐한 응원을 보냅니다. :) 저도 더 분발해야겠어요. 고민도...
Commented by 왕도비정도 at 2006/04/09 23:14
/자유인 과찬이십니다;ㅁ; 요즘은 그나마했던 약간의 고민조차도 안하고 지내고 있어서.. 저도 좀 더 부지런히 걸어야겠어요.^^
Commented by 이성한 at 2006/06/11 12:35
생각만큼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놈

재미있네

남의 생각을 엿보는 것도..

열심히 해라 시작했으면
Commented by 왕도비정도 at 2006/06/11 22:31
/성한 녀석, 반갑네. 이런 데서 볼 줄이야..ㅎㅎ
그래, 시작해놓고 제대로 하질 못해서 모두에게 미안하다..
남은 시간 잘 지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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