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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랜 만에 편지를 쓰네요. 예전엔 선생님 편지 보는 즐거움으로 살았었는데 작년엔 한 통도 못 썼어요. 저는 산 좋고 물 좋공 공기좋은 논산훈련소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밖에 비가 오네요. 여기 들어와서 처음 오는 봄비... 목력은 벌써 봉우리를 터뜨렸고 이 비가 그치면 개나리가 만발할 거예요. 좋은 날씨에 좋은 동기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바깥에 있었을 때보다 더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0시면 취침하는 규칙적인 생활. 스스로 빨래하고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살아가는데 있어 단순한 육체노동이 필요하구나 깨닫고 있어요. 타성에 젖어 반복되던 하루였었는데 새벽녁의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들의 지저귐을 듣고 희석되지 않은 새벽의 공기를 마시고 있노라면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천상병의 <귀천>의 구절이 가슴에 와닿아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이어지는 내용 누나, 잘 지내고 있어요? 봄이네요. 학교 다닐 땐 계절 가는 것도 잘 몰랐었는데 여기선 봄이 왔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조금 전에 체력단련하고 오는데 개나리가 꽃봉오리를 터뜨렸더라구요. 이제 3월도 거의 지나가고.. 곧 있으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하겠네요. 인천에 있으면 민채랑 누나랑 같이 벚꽃구경가고 했을텐데... 아쉬워요. (물론, 김밥은 누나가 싸오시겠죠?^^) 오기 전에 같이 등산이나 바닷가라도 갈 걸... 매번 칙칙한 인하대 밥집에서만 있었다는 게 넘 아쉬워요. 누난 이제 중.고등학교도 개학했을테니 많이 바쁘죠? 새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겠네요. 칠판 앞에 서있는 누나, 그리고 그 앞에 움츠러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애들이 넘 불쌍해보여요. 하핫 새로 맡게된 애들은 어떤가요?
그 때 누나 얘기 들었을 때 제가 놀랬던 거 알아요? 한 아이, 한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들 얘기를 하는데 평소 제가 알고 있던 호전적인(?) 정치외교학과 K씨와는 너무 다른, 감수성 풍부한 소녀(?)처럼 보였어요. 아이들의 사소한 고민부터 깊은 곳까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특이한, 아니 특별한, 그래서 각별한 학원쌤 K씨. 방학 때 학원에서 애들한테 수업료 더 받고 보충수업할 때 학부모한테 그냥 돈 안 받고 해준다고 했던 사람.. 수학샘이었나? 다른 과목쌤한테도 "돈 안 받고 해주실 거죠?"라고 했던 사람. 지금 생각해보면 K 누나 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같이 간디학교 가자고 해놓고선 결국 못 갓네요. 누나같은 사람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저도 전역하고 바로 복학대신 대안학교 교사생활이나 귀농학교에서 농사짓는 경험을 해보려구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할게요. 다음에 기회되면 같이 가요.^^ ![]() 이어지는 내용
잘 다녀올게요. 3월 6일 입대해요.
의무소방으로 가구요. 대구에서 근무해요. 가기 전에 편지 쓰고 싶었던 사람들 많았었는데, 한 명도 못 쓰고 가는군요.ㅠ.ㅠ 누군 쓰고 누군 안 쓰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ㅋ.ㅋ 오늘 잠을 줄여서라도 한 명에겐 써야겠다 싶어요. 사실 저는 기대가 되네요. 책상에 앉아만 있다가 노동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니...(진심) 소방서에 가면 자살하는 사람들, 시체, 화재현장, 공무원생활(나중에 교사생활이 어떤지 미리 접할 겸) 을 볼 수 있다네요. 가서 땀 좀 흘리고 오겠습니다. 한 달에 한 번, 3박 4일 외박되고요. 추가로 1년에 보름인가, 20일인가 휴가 있다네요. 어떤 곳은 일요일에 종교외출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건 소방서마다 달라서 배치받아야 알 것 같아요. 그 전에 미리 연락을 했어야했는데, 아는 블로거분들에게도 미처 연락 못 돌리고 가네요. 휴가 때 저와 놀아주실 분들은, 댓글 달아주세요. 폰은 6월이나 7월부터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그 때까지 안녕^^ (댓글에 주소 달아놓으시면, 왕도비정도의 자필 편지 갑니다.♡ 고급스런 Ibis 풍경 편지지 챙겨갑니다.ㅋㅋ 참, 이 시간 이후로 댓글 확인은 1달~2달은 지나야 가능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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